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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끄적임

5월 26일 - 수퍼 블러드문을 보다

by LarchmontKorean 2021.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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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새벽 3시 반, '슈퍼 블러드문'이라는 걸 보기 위해 잠에서 일어나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LA에는 밤하늘을 관찰할 수 있는 장소가 몇 군데 있다. 그리피스 공원과 산타모니카 해변 그리고 볼드윈 힐즈라는 곳이다. 여기 말고도 라카나다를 지나 2번 고속도로 북쪽으로 올라가는 산길 중간에 차를 세우면 도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뷰포인트가 있고 도시의 밤거리에선 볼 수 없는 수많은 별을 볼 수 있다.

 

사실 볼드윈 힐즈는 계단으로도 유명한 곳이라 아침에 조깅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날 새벽에도 나처럼 달을 보기 위해 낚시 의자를 챙겨 나온 엔젤리노 몇몇이 보였다. 언덕 밑의 야경에서 은은하게 비춰오는 도시의 불빛에 의지해 어두운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그동안 운동이라곤 숨쉬기밖에 하지 않았던 탓에 숨이 차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지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달은 찾아볼 수 없었고 별을 관측하기엔 하늘이 밝았고 구름이 너무 많았다. 4시 30분에 블러드문의 피크를 볼 수 있다고 했으니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달이 구름 밖으로 고개를 내밀기를 기다리며 3년 전 LA에서도 볼 수 있었던 부분일식을 보기 위해 아침에 일찍 출근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회사 건물 길가 앞에서 사람들과 모여 종이로 만든 선글라스를 서로 돌려가며 관찰을 했었다. 부분일식이었지만 잠시 세상이 어두워졌고 사무실에선 온종일 일식을 봤냐는 얘기를 하며 잠시 바쁜 업무에서 손을 내려놓고 담소를 나누며 모두 즐거워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다시 이런 진귀한 자연현상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기다리는 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달이 드디어 구름 밖으로 나왔고 시간은 4시 반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뉴스 기사에서 본 붉은 달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불그스름한 색깔을 띠기는 했지만, 달이 그다지 커 보이지도 않았고 별로 특별한 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밤하늘을 무심코 올려다보면 가끔 보이는 보름달이 더 커 보이고 특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의 실망감에 사진이나 찍자 하고 핸드폰을 꺼내 찍어 봤다.

 

 

 

 

노출 시간을 길게 하고 찍은 사진으로 보니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어떻게 실제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광경이 사진보다 못한 걸까 하고 생각을 해봤다.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는 컴퓨터를 통해 세상을 본다.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자극적인 기사들과 영상들을 통해 어쩌면 세상도 실제로 그러할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핸드폰을 잠시 내려놓고 가만히 있으면 세상은 참 조용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 모든 인간의 하찮은 사건·사고를 시간은 무심히 지켜만 보고 말없이 흘러간다.

 

블러드문이나 일식 같은 자연현상을 일생에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 상상할 수 없이 기나긴 세월을 우주는 몇 번이고 봤을 텐데, 짧은 인생을 사는 우리에겐 기록도 하고 사진도 찍을 만한 소중한 순간이다. 그렇다면 우주의 입장에서 보면 이 공간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안개처럼 사라지는 우리도 소중한 존재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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