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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이야기

미국 직장 생활에 관하여 - 30대 LA 직장인

by LarchmontKorean 2021.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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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정치, 한국보다 심할까?

영어로도 '사내정치'는 "Office politics"라고 합니다. 승진을 위해서, 더 알짜배기 일을 쟁취하기 위해서 직장 내 정치는 잘해야 되고, 코칭을 받기도 하고 또 코칭을 해주기도 합니다. LA에 있는 회계법인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저의 경우, 신입사원도 많이 들어오고 승진 압박도 주는 분야의 일이라 밤새도록 주말도 없이 일을 해야 되는 것도 힘들었지만, 정치를 제대로 하는 게 더욱더 힘들었던 적이 훨씬 기억에 많이 남네요.

 

'사내정치'라는 게 뭘까요? 네이버 사전에 검색을 했습니다. '고용된 조직 내에서 이익을 얻기 위한 목적을 기존의 보장된 권한을 넘어 개인적인 또는 주어진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쉽게 생각하자면,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줄을 서는 것' 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직장상사에게 잘 보이려면 그 사람에게 빌붙어서 한 없이 잘해주는 방법도 있겠지만, 나와 경쟁구도에 있는 다른 동료들을 무너뜨리는 전략도 때때로 필요하지요. 저도 이 LA바닥에서 해봐서 아는데, 상대방을 실책을 하게 만들고 다음날 다크 서늘이 늘어진 그 사람의 처참한 모습을 보며 쾌감을 느낀 적도 있지요. 

LA-다운타운-고층-빌딩들의-사진
LA 다운타운

미국도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도 한국만큼 심하면 심했지, 덜 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한국에 있는 지인들로부터 들려오는 얘기를 들으면, 막말의 정도에서 조금 톤 다운된 건 사실이지만, 이 미국인들과 일하다 보면 정말 기가 막힐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욕심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하면서 뭔가를 기대하게 되고,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 결과를 받으면 망연자실하기도 합니다. 제가 어떤 일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몇 가지 에피소드를 준비했습니다.

직장상사에게 잘 보이기 - "Favoritism"

직장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건 정말 피곤한 일입니다. 내가 이런 눈치나 보려고 우리 부모님이 비싼 밥 먹이시며 힘들게 키우셨는가 하는 그 마음, 직장 생활해보면 누구나 다 느끼는 거지요.

 

잘 보이려면 좀 더 친해져야 되고, 상사의 취미도 알아야 되고, 다가가서 이것저것 속 편하고 세상 좋은 척 말도 잘해야 되고, 정말 사교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선 아주 피곤한 일인 건 사실입니다. 게다가 이걸 영어로 또 떠들어야 되니 원래 잘 떠들고 영어도 잘하는 미국인들한테 밀리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에요. 나랑 떠들면 시큰둥하게 웃는데, 자리에 돌아와 지켜보자면, 다른 동료들 하고는 신나게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며 배가 아팠던 적도 있습니다.

 

나한테 잘하고 친근한 사람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본능일 겁니다. 직장 내 이런 편애 하는 걸 "Favoritism"이라고 하는데 이걸 어느 정도 방지하기 위해 팀원도 순환시키고 온라인 트레이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컴퓨터를 끄고 다들 오피스를 나가 회식자리로 가면 더욱더 심해지지요.

맥주-잔-든-모습
회식자리에서 나 홀로 맥주 한잔

제가 일했던 부서에는 회식자리가 많이 없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걸 기회로 삼고 치고 올라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 심지어 회식계획위원회도 꾸려졌어요. 이른바 'Happy hour committee"라 불렀는데 저에게는 수작으로 밖에 안 보였습니다. 죽도록 바쁜 프로젝트가 끝나면 휴가나 가면 될 것을, 잘 보여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한 두 명이 꼭 높으신 분들 방 근처에 기웃거리면서 회식자리, 이른바 "happy hour"를 하기 위해 플랜을 짭니다. 플로어 전체를 초청해서 이메일을 보내 놓으면 남들 가는데 안 갈 수도 없고, 그리고 가봐야 이미 높으신 분들 옆구리는 다 찜 하고 가도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술 마시는걸 안 좋아하는데, 나중엔 높으신 분들 엘리베이터 타고 이동하는 게 불편할까 봐, 오피스 내에서 콘퍼런스 방 하나 잡고 술판을 벌이고야 말더라고요. 결국엔 이런 회식이 끝나고 몇 분기 지나면 그 애들만 승진하는 겁니다. 정말 눈엣가시죠.

가족 같은 기업 - 막내는 밥 셔틀도 한다

이런 사내정치의 폐해는 저같이 눈치 없고 융통성 부족한 사람들이 한번 해보겠다고 아무거나 하다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짓을 스스로 하는 게 정치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경험치가 부족했던 초짜 때 일인데, 언젠가 클라이언트가 와서 오피스 정리를 시킨 적이 있습니다. 제 팀에서 제일 막내였던 제가 클라이언트를 위해 콘퍼런스 룸을 정리하고 컴퓨터 셋업까지 했습니다. 몇 시간 뒤, 마침내 그분이 도착했고, 매니저를 보자마자 '배가 고프다'라고 하더라고요. 오후 3-4시쯤이었는데, 배달하면 성의가 없는 것처럼 보이니 가서 직접 사 오라고 하는 어이없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섰습니다. 잘 보이기 위해 한 짓인데 그 시간에 클라이언트랑 한마디라도 더 나눌 일이지 이건 정말 멍청한 짓이지요. 샌드위치를 사러 나가는데, '내가 이러려고 미국까지 와서 대학을 나왔는가'라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한국 드라마가 아니라 미국 LA 한복판 대기업 사무실에서 일어난 일이라 더 놀랍네요.

직장생활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실제로 초고속 승진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부 잘하고, 얼굴 두껍고, 필요하고 돋보이는 일만 하는 친구들이죠. 이렇게 정치도 어느 정도 해야 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은 찾아서 할 필요가 없는 적당한 융통성을 보여야 되는 거죠. 언제나 Yes맨이 될 필요도 없고,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는 거 같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It's just business", 즉 돈 벌기 위해 해야 되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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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에서 내다본 LA의 야경

밤늦게 일하다 나와서 찍은 사진입니다. 필요할 땐 일을 많이 해야 되지만, 적당히 아부도 하고 골라서 잘하는 센스를 보여주는 저의 모습을 보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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