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언어에 관한 진실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들은 주위로부터 부러움을 삽니다. 특히, 해외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는 유학생이나 몇 년간 살아본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는 요즘엔, 영어뿐 아니라 스페인어, 이태리어, 불어 등 몇 개의 외국어를 나름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지요. 저도 어릴 적 해외에서 살았던 친구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던 기억이 있는데요, 요즘은 보기도 힘든 카셋 테이프로 영어 듣기를 공부했었고, 중학교, 고등학교에선 학기마다 한 번씩 꼭 듣기 시험을 봤던 추억도 있지요. 좀 살다온 친구들에겐 아주 쉬운 시험이었지만, 저에게는 어려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민이나 유학을 가게 된다면 영어도 잘하고 모국어인 한국말도 잘하는 이중 언어의 삶을 한번쯤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거예요. 자유자재로 여러 언어를 번갈아가며 소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변에 미국 유학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겉보기엔 아주 잘하는 것처럼 들릴 테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들의 영어에도 단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며칠 전, 에릭남의 CNN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생방송 중 그 정도 영어를 구사한다는 건 원어민 수준이라 생각하면 되지요. 발음, 표현, 제스처 어느 하나 빠지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그의 영어는 미국인의 영어처럼 들렸어요! 물론 에릭남은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으로 비교가 불가능 하지만, 해외로 넘어가 살게 된 토종 한국인이 만약 그 정도 수준의 영어를 구사한다면, 그 이면에는 분명 피나는 노력이 있었을 겁니다.
일반고 유학반?
2000년대 중반, 저는 서울의 한 일반고에 재학중 이었어요. 우리 반은 학교에서 유학반으로 알려질 만큼 저를 포함해 총 5명의 학생이 1학기를 마치기도 전 해외로 유학 또는 이민을 떠났습니다. 아쉽게도 그들 중 지금은 연락이 닿는 친구는 한 명도 없지만, 모두가 해외에 나가서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습득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과 외로운 싸움을 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모두가 각자의 길을 갔겠지만, 저처럼 해외에 남은 케이스와 그렇지 않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케이스도 많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케이스의 경우, 분명히 언어의 장벽도 그 결정을 하는데 큰 요소로 작용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만큼 해외에 나와 외국어를 배우고 완전히 자기의 언어로 만들고 한국어와 더불어 이중언어로 생활을 한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원어민처럼 영어 할려면 몇 년 걸러요?
저는 가끔 지식인에 들어가 미국 생활이나, 유학, 또는 영어회화에 관한 질문들에 대답하는 걸 좋아해요. 한국에서 배우는 영어가 미국에서 실제 쓰이는 영어랑 많이 다르고, 또 제가 어렵게 배운 걸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거든요. 그런데 유학이나 이민을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식인에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영어를 얼마큼 공부하고 가야 돼요", 또는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는데 몇 년 걸려요?"인데, 주저하지 않고 답을 드린다면, 해외에 나오기 전 되도록이면 10살 이전에 원어민과의 수업을 통해 회화를 시작해야 되고, 그렇지 않고 십 대 중후반 혹은 성인이 되어 온다면, 영어는 아마 평생 외국어로 느끼며 살아가야 될지 모른다는 게 현실입니다.
물론 이건 제 생각일뿐 입니다. 연구결과 1에 의하면 많은 학자들이 언어적 감각이 사라지는 특정 연령 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빠를수록 좋다'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미국에 살며 다양한 연령과 세대의 이민자, 재외국민, 유학생 등과 교류하며 쌓은 저의 경험을 토대로 말하자면, 10살 이전에 온 친구들의 경우, 발음과 표현적인 면에서 원어민과 흡사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는 사람들을 많이 있는 반면, 머리가 다 커서 온 경우에는, 영어 실력을 늘리는데 한계를 경험하는 케이스를 수도 없이 많이 봤어요.
저의 케이스를 예로 들자면, 서른이 넘은 지금의 제가 바라본 고등학생 1학년의 경우, 법적으로는 아직 성인이 아닌 청소년 또는 어린이라고 쳐도, 언어의 영역에서는 이미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에는 거의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는 시점이라 생각됩니다. 언어적 능력이 굳어가기 시작하던 대학생 시절이 저의 영어 능력의 밑바탕으로 자리 잡아서, 그동안 취업과 직장 생활을 거쳐오며 정말 작은 개선을 해왔지만, 서른이 넘은 저의 지금의 영어 수준은 그 당시와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요. 더군다나 내향적인 성향을 가진 저로선 뇌가 말랑말랑하던 시절을 놓쳐버리고 나중에서야 그때가 마지막 기회였음을 깨닫고 있지요.
성격과 성향은 언어를 배우는데 중요한 요소다
물론 예외도 있는 법입니다. 예외에 속한다면 참 좋겠지요?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3년 차에 접어들 무렵, 겉보기에도 한국인, 성도 김 씨인 어떤 한 친구가 새로 팀에 들어왔던 기억이 있어요. 한국 사람들 특징이 해외에서 서로 만나도 절대로 영어를 하지 않는 이상한 면이 있는데, 저 역시도 마찬가지라 그 친구와 영어로 대화를 나눴지요. 말을 한 두 마디 나눠보니 영어를 2세 친구들처럼 하길래, 저는 그가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터놓고 얘기를 해보니, 저와 같은 나이 때 미국에 온 친구임을 알고 깜짝 놀랐었지요.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하는가 곰곰이 따져봤더니, 이 친구는 아주 외향적인 성향의 사람이었고 바로 그 점이 그의 영어실력을 유창하게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지요. 그 친구는 입사한 지 일주일도 채 안되어 제가 3년간 직장생활을 할 때도 친구로 못 지내던 다른 동료들과 함께 친구를 먹고 런치 버디가 되어 버렸습니다. 전 이 사실을 알고 어이도 없고 질투도 났지만 삶이란 원래 능력대로 사는 게 아니겠어요?
이처럼 외향적인 성향이고 창피함을 겪어도 쉽게 훌훌 털어버리고 잊어버리는 성격이라면, 늦은 나이에 해외에 나와도 영어실력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말이 안 통해도 친구를 쉽게 만들고 붙임성이 좋은 사람은 어딜 가도 친구를 만들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재미있기 때문이지요. 또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쉬운 환경에 놓이기도 하고요 반면에 저처럼 친구 만드는걸 잘 못하고 혼자 사색에 잠겨있기 좋아하는 성향의 경우 따로 배의 노력을 들여야 됩니다.
미국에서 살며 매일 영어를 쓰는 학교에 다니면서도, 혼자 방 안에서 미드와 영화를 수십 개를 연속해서 보면서 종이에 적고, 미친 사람처럼 혼자 대화를 하고 가상 대화 시나리오를 짜서 줄기차게 외우고 연습을 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나마 그렇게 어린 시절에 미친 사람처럼 공부를 했기에 다행이지, 미국에 산다고 영어공부를 게을리했더라면 지금의 영어조차 구사하지 못했을 뻔했다 생각도 하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원어민의 영어를 구사하는데 한계가 있는 거 같습니다. 유치원도 다니기 전 어릴 때를 기억하시나요? 그때는 정말 또래 동네 친구들, 동화책, 수많은 교재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원어민 어머니와 일대일 학습을 하며, 아무도 창피를 주지 않고 혼도 나지 않고, 내 페이스대로 수년간을 학습을 한 거지요. 그 결과 학교에 들어갈 때쯤이면 정말 원어민이 되는 거지요. 이렇기에 가끔, 미국 어린이들을 보면서 참 부럽다는 망상도 하기도 합니다.
현실은 나이를 먹어가면 머리는 점점 굳어가고 영어는 제자리걸음만 하게 될 수 있지요. 그리고 어느 순간 어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하고 그제야 모든 게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과연 미국에서 내가 직장도 잡고 승진도 하고 결혼도 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해결책을 찾느라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적이 많지요.
꾸준한 노력이 뒷바침에 되어야 한다
이처럼 미국에 나와서 산다고 해도 영어를 완전히 자기것으로 만드는 것은 매우 힘든 일 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살려면 마냥 그 사실을 인지만하고 개선할려는 의지 없이 포기 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책도 많이 읽고, 방송을 보면서 따라하고 그렇게 하면서 나름의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저같이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는데, 1.5세는 종종 0개국어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한국말을 완전히 다 배워 한국 대학에서 전문서적도 읽어 보고 사회생활도 하면서 고급스러운 표현과 유창한 실력을 갖추기 이전에 해외로 나왔고, 또 영어를 채 배워보기도 전에 삶의 전선으로 내몰려 원어민의 실력도 못 갖추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지요. 한 마디로, 두 언어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원어민처럼 할 수가 없게 되어 0개국어가 되는 겁니다.
혹시 '미국 물' 좀 먹었다는 사람들이 국내로 들어와서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쓰는 경우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도 처음엔 상당히 '재수 없다' 라고 생각을 했어요. 아니, 영어로 말할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하든가, 아니면 한국말로 하려면 하든가. 왜 굳이 둘을 섞어가며 아는 척을 하는건지. 실제로 나와 살아보니 이제는 이해가 갑니다. 저도 그러고 있는 것을 어느 순간 발견을 했거든요. 미국에 오기전 알던 표현과 주제에 대해선 한국말로 하는게 편하고, 미국에 나와서 알게된 삶의 영역에 대해선 한국말 표현을 몰라서 영어가 그나마 쉽게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저 같은 경우, 제가 회계쪽 일에 종사를 하고 있지만, 미국 조세법을 한국말로 설명하라고 시킨다면, 잘 못할겁니다.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라 영어로 배워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섞어서 표현해야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런 사람들을 보신다면 너무 비판적인 시각으로만 보시지 말고 그런 어려움이 있다는걸 제 글을 통해 한번쯤은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영어에 대해서는 앞으로 할 말이 더 많을거 같에요. 어떤 표현이 실제로 쓰는 말인지 어떤 표현이 책에서만 보이는 표현인지 제가 아는 한 나눌 예정입니다.
끝으로, 제가 전에 LA에 있는 한 한국 고깃집에서 미국인들과 식사를 하던 한국분이 불을 좀 더 높여라 라는 뜻으로, "Increase the fire!" 라고 말하는 걸 들었는데요, 물론 못 이해 할 정도의 말은 아니지만, 이런식의 영어는 좋은 영어가 아니지요. 그럼 어떻게 말하는게 더 좋을까요? 다음 시간에 마저 대화해 보겠습니다.
1: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6168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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