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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생활 이야기

미국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

by LarchmontKorean 2021.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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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의 수가 200만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주로 뉴욕이나 엘에이 등 미국의 대표적인 대도시에 모여 살고 있는데요, 이렇게 그 숫자가 많기에 미국에 살다 보면 이런 한인들을 만날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정서도 비슷하고 입맛도 비슷하고 무엇보다 한국말을 할 수 있기에 쉽고 편하게 친해질 수 있다는 착각으로 한국인을 만나면 자연스레 만남의 횟수도 늘고 모임도 가지게 되는 법이지요. 하지만 해외에 살고 있는 마당에 같은 한국이라는 점만으로 굳이 깊이 사귀며 교류할 필요가 있을까요? 오늘은 그동안 제가 미국에 살며 만났던 한국인들에 대해 말하며 배우고 깨달은 점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친한 만큼 질투가 생긴다

 

이민자라면 경제적 성공에 대한 욕심이 많은 건 어쩌면 당연할지 모릅니다. 미국이 오늘날 이렇게 부유한 국가가 된 이유도 이민자들이 이주해 어렵게 살며 성공에 대한 열망 하나로 치열하게 일해 그 부를 이룬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직장생활을 하며 느낀 것 중 하나가 성공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점이 있단 걸 알았는데요, 그것은 바로 질투와 욕심입니다. 질투와 욕심은 너무 과하면 정신 건강에 좋지 않지만 잘만 활용하면 게으름을 떨쳐내고 열심히 일을 하게 해 줘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살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장점은 딱 여기까지라고 볼 수밖에 없지요.

 

특히 질투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기에 더 위험합니다. 나랑 비슷한 수준인 줄 알았던 사람이 승진을 연달아하고 어느 날 갑자기 나보다 잘 살게 된다면 질투를 느끼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건 '나랑 비슷한 수준의 사람'입니다. 이미 나보다 월등한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는 건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에 나와 비슷한 주변의 사람, 즉 친구나 이웃 또는 심지어 가족까지 질투를 느끼게 되고 만나면 은연중에 비교하거나 무시하고 싶은 말을 내뱉을 수도 있지요. 그러기에 우리는 질투라는 감정을 항상 조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몇 년간 알고 지내던 이 친구는 제게 몇 안 되는 지인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쌀쌀맞은 미국인만 가득하던 직장에서 미소와 악수로 다가와 준 사람이었지요. 이 친구를 통해 다른 한국 사람들도 알게 되었고 종종 한인 식당에 가서 같이 점심도 먹고 주말엔 골프도 치게 되는 사이로 발전을 했습니다. 저의 까다로운 성격 탓에 어느 정도 거리를 뒀으나 제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저도 깊은 고민을 털어놓을 일도 있었기에, 또 가장 중요하게도 같은 한국인이고 한국말로 쉽게 설명하고 털어놓기 참 좋은 상대였기에 쉽사리 누구를 '친구'라고 평가하지 않는 저도 어느 정도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깊이 알게 될수록 그 친구와 저는 각자의 경제 상황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게 되었지요. 어쩌다 운이 좋아 처음으로 이직을 했을 때 연봉과 보너스를 높게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 아무 생각 없이 말을 해버린 게 실수였을까요, 친구는 그때부터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기 시작했지요. 링크드인을 통해 수시로 저의 프로필을 조회하며 승진시기 때마다 저의 커리어 변화를 살펴보기 시작했고 집을 어디에 얼마 주고 샀는지, 차는 언제 무엇으로 바꿔 탔는지 직설적으로 물어보며 궁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만나면 하는 대화의 주된 내용은 어느새 돈에 관한 것이 전부였지요. 갑작스레 카톡이 오면 주식과 코인은 어떻게 투자하고 있는지 물어보며 마치 재 자산이 얼마가 어떻게 있고 다른 직장에 다님에도 불구하고 본인과 비교해 회사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알고 싶은 마냥 꼬치꼬치 캐묻고 뒤로 염탐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안 좋았습니다.

 

미국에 살며 만나온 미국인들과는 이런 대화를 해본 적이 없는 저로선 당황스러웠습니다. 대학생 시절부터 기숙사에 같이 살며 알고 지낸 중국계 미국인 친구들과는 절대로 연봉이나 개인적인 투자 혹은 부동산에 관한 말을 쉽게 해 본 적이 없었고, 직장에서 만난 동료들도 쉽사리 개인적인 일에 대해선 말하지 않길래 미국인의 문화라고 받아들여 오래 미국에 산 저도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져 이미 저의 일부가 되었던 거지요. 한국말을 한다고, 같은 한국이라고 나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이라고, 어느덧 비교를 하기 시작하고 평가하기 시작했던 거지요. 어느 순간 저도 그 친구가 저보다 잘난 면이 있단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던 제 자신도 약간의 질투심을 느끼고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연을 맺기엔 위험하다

대체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된 건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나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와 저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음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저는 만나면 술을 권하는 친구가 부담스러웠고 큰 모임이나 가족 동반 혹은 파트너를 동반하는 모임을 싫어하는 저로선 제발 여자 친구 좀 데리고 나오라는 친구의 말이 참 듣기 싫었습니다. 알고 보니 한국에 있었더라면 친해지지 않았을 유형의 사람이었는데 단지 미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외롭고 심심하니 같은 한국인과 어울리자는 생각 하나로 맺어온 인연이었기에 이런 일이 발생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동안 만나왔던 한국인들을 하나씩 생각해보게 되었지요. 내가 알고 지내던 한국인 중 단 한 명이라도 내가 진정으로 친구라고 느낄 수 있는 존재가 있었을까? 대학 시절, 새벽부터 해 뜰 무렵까지 밤새워 억지로 같이 술을 마시던 한국 유학생들은 진정한 친구였을까, 분위기에 휩쓸려하고 싶지 않던 일을 같이 하며 친구라고 불렀던 존재들과 나는 정말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과 도움을 주는 존재였을까? 수많은 얼굴이 스쳐 지나갔고 그들과 같이 했던 순간들, 당시의 내 감정들, 땅바닥으로 꺼져있던 자존감과 열등감 등, 나 자신의 불안하고 나약했던 정서가 다시 기억이 났고 끝내 결론에 이르게 되었지요. 미국에 나와 산다고, 아는 사람이 없다고, 단지 힘들 때 같이 술 한 잔 할 친구가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를, 혹은 나와 성향이 정 반대인 한국인들과 인연을 맺기엔 너무 위험하다는 깨달음을 말이지요.

 

해외에 이주하여 살고 있는 이민자들에겐 이런 약점이 너무도 많습니다.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영어가 불편한 이민자들은 같은 한국인에게 사기를 당하기 쉽고 외롭고 힘든 생활을 하는 유학생들은 일부 질이 안 좋은 다른 한국 학생들과 어울려 많은 돈을 써가며 공부를 하러 해외에 나왔다는 사실을 새까맣게 잊고 멀리서 돈만 보내주는 그들의 부모들은 까마득히 모를 잘못된 길로 가기 쉽지요.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선한 방향으로 끌어줄 고마운 존재가 있는 반면에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사람도 만날 수 있기에 가려 사귀어야 함은 미국에 이민을 와서 만난 한국인들에게도 적용됨을 알아야 된다는 것이지요. 아니, 특별히 내 나라 땅이 아닐수록 조심해야 된다는 것을 말이지요.

 

목적이 있는 인연은 쉽게 사라진다

외롭고 힘들었던 학생 시절, 우연히 친구의 소개로 나간 한인 교회에는 캠퍼스에선 잘 보이지 않던 많은 한국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신앙의 목적이 아닌 사교의 목적으로 나간 교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역시 저와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지요. 저마다 새 신자 팸플릿을 끼고 시끄럽게 소모임을 하고 난지 얼마 안 되어 이들은 아무도 다시 교회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순간의 사교와 찰나의 웃음을 위해 단물만 삼키고 버리던 그 관계들은 오래가지 못했던 거지요. 단순히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어린 학생들이었기에 그랬다고 보기엔 엘에이의 몇몇 대형 한인교회들도 이런 경우가 허다합니다. 비즈니스를 위해 또는 자녀 시집 장가를 보내기 위해 한인교회로 모인 내부 신자들은 찬송가를 부르며 예수를 찬양하다가도 틈만 나면 세력을 나누어 당파싸움을 하고 서로를 향한 온갖 험담과 루머 그리고 시기 질투로 결국엔 망하는 모습을 봐왔습니다. 교회라는 집단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고 단순히 예를 들어봤지만, 이처럼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함부로 맺은 인간관계는 그 깊이가 얕고 수준이 저급하며 아무런 가치가 없단 것을 증명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친구가 중요한 줄만 알았던 어린 시절의 친구들은 같이 웃고 떠들 당시 그 순간만큼은 참 소중했습니다. 머리가 크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다들 어느 순간 물질에 대한 대화만 나누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고 미국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서로 미국에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부터 시작해서 물어보지도 않은 자식 자랑과 집안 자랑을 연이어 내세우고 사는 동네와 주택 그리고 차 등, 서로의 경제력과 표면적인 과시를 하고 비교하고 무시하며 단지 한국인과 교제하는 게 편하고, 미국에 나와 외롭게 산다는 이유만으로 뒤로는 헐뜯고 앞으로는 어색한 미소를 띠며 전쟁같이 치열한 사교 아닌 사교를 하며 살아가고 있지요.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은 공통분모 중 하나일 뿐이다

이민을 온 지 몇 년이 좀 안되었을 무렵, 영어는 아직 서툴렀지만 남이 하는 영어를 주의 깊게 들으며 어떤 부분을 틀리는지 분석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인을 만나면 저도 영어를 못하던 주제에 가차 없이 저평가하고 무시를 했고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보면 부들거리며 분노의 질투를 느끼던 어리석은 시절이 있었지요. 돌이켜보면 단지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비슷한 수준일 거라는 예단을 하고 남을 함부로 평가하고 비교했던 거지요. 세월이 흘러 삶이 바빠지고 내 일만 신경 쓰기도 벅차다고 느꼈을 때 비로소 남과의 비교를 멈출 수 있었습니다. 누가 성공하면 성공했을 이유가 있을 것이고 힘들게 산다면 그러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난 나의 할 일이 있으니 오직 나를 기준으로 내 할 일만 하면 된다는 큰 깨달음을 얻은 겁니다.

 

해외에 나와 한국인을 마주한다면 나의 상황과 비교해 겉모습 만으로 판단하기 쉽게 됩니다. 질투가 많은 한국인의 성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200만이나 되는 한국인들이 미국에 살고 있기에 너무나 다양한 모습의 삶을 살고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잘 살고 어떤 사람은 못 살고, 그런데 그게 왜 중요한 걸까요? 진정 우리는 사람을 사람으로서 인정하고 편하게 만날 수는 없는 걸까요? 나보다 못하거나 비슷한 이웃과 친구를 무시하거나 비교하지 말고 나보다 월등히 잘난 사람들을 목표로 열심히 사는 것이 진정으로 현명한 일이 아닐까요?

 

한 해를 마무리하고 돌아보며 앞을 내다볼 시점에 얻은 깨달음 치고는 참 안타까운 깨달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로 방 안에 갇혀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게 오직 일만 하고 화면을 통해 세상을 보고 사람을 마주하며 안 그래도 모두가 외로울 텐데 사람이란 존재에 정이 떨어지는 씁쓸한 연말입니다. 하지만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모두 다 이렇지만은 않을 겁니다. 분명한 것은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선 한국인이든 아니든 단순히 편한 점과 재미만을 추구해선 안되고 경험으로 축적된 안목과 노력으로 좋은 인연을 만들어 나가야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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