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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이야기

미국 이민 16년차 직장인이 본 인종갈등 - 無知가 원인이다

by LarchmontKorean 2021.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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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fauxels  from  Pexels

 

미국의 인종갈등 그리고 인종혐오에 관하여


뉴스를 통하여 전해오는 인종갈등 그리고 무차별적인 폭력 등은 미국에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저로선 정말 참담하게 느껴집니다. 혹시나 부모님이 집 앞에 산책이라도 가셨다가 무슨 변을 당하시지 않을까 요즘 들어 걱정이 많이 됩니다. 만약 사진처럼 모든 인종이 화목하게 어울리며 갈등이 없는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의 지난 16년간의 미국에서의 삶을 바탕으로 그리고 저만의 경험을 근거로 미국의 인종갈등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미국에 처음 왔을 십 대 무렵, 전 LA의 한 공립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한국에서는 구경조차 힘든 남미 이민자들이 전체 학생의 7~80%를 차지하는 LA의 일반적인 공립학교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당시엔 이런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부모님과 함께 학교에 등록을 하러 갔을 때,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오며 머릿속에 그렸던 하얀 백인들과 금발의 미녀들이 푸른 잔디밭의 교정을 거니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현실은 정 반대였기 때문이지요. 어릴 적 사회과부도를 보며 한번 들어봤을까 말까 했던 이름의 국가들에서 온 난생처음 보는 모습의 외국인 학생들과 ESL 클래스를 들었어요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외국인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영어수업).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조차 영어를 잘하지 못했고, 처음 몇 개월 수업을 듣다가 주위에서 들리는 말이라곤 스패니쉬가 전부여서 도저히 영어를 배울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때부터 저는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생전 처음으로 경험하기 시작했지요.

 

미국 고등학교 교사가 나를 China Man이라 불렀다

전학을 간 학교는 백인이 8~90%를 차지하는 학교였습니다. 일단 학생의 대부분이 수백억이 넘는 부를 가진 부유한 집안의 자녀들이었고, 세상의 험한 꼴은 죄다 피해오며 살아왔던 그들에겐 이민자들 또한 역겨움 또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나 봅니다. 뉴스에서나 보던 Racism 이란 걸 피부로 경험하기 시작했던 게 아마 그때 무렵이었지요. 한 영어 수업시간에서, 선생님이 결근을 하여 subsutitue teacher, 대체 교사가 들어왔던 날이 있었어요. 출석을 부르던 도중 내 이름을 보고 한참을 망설이더니, 어떻게 발음을 하는 거냐 물어봤습니다. 사실 미국에 와서 한국 이름을 그대로 쓰면 이런 일은 종종 있는 법이지요. 대답을 해주니 돌아오는 답변은, "China man 들의 이름은 발음하기 어렵다"며 웃어넘기는 것이 아니겠어요? 저를 중국인으로 오인해서 Chinese라는 표현을 쓸 수는 있지만, China Man이라는 말은 미국에서 쓰지 않지요. '아시아의 수많은 국가와 문화권의 어디 소속이 든 간에 내게 넌 그냥 중국인으로밖에 안 보인다'라는 정도의 사상을 유추할 수 있는 거지요. Chinese라는 말을 놔두고 어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섞인 발언이기에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그 후로도 제 이름을 발음을 못하면 배우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던 교사도 있었고, 심지어 가르쳐 주면 "Whatever. (니 이름이 뭐든 간에)" 라며 지나가는 교사도 있었지요. 당시엔 철없고 줏대 없는 십 대였기에, 한 마디 대꾸도 하지 못하고 부모님이 정성스레 지어주신 제 이름에 창피함을 느끼기도 했었습니다. 훗날, 이런 트라우마로 인해, 영어 이름을 하나 정해 쭉 써왔는데, 종종 왜 동양인들은 어울리지도 않는 미국 이름을 정해 쓰냐는 조롱 섞인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지요. 사실, 언어적인 차별 (Verbal abuse) 은 인종차별에 있어선 굉장히 작은 영역이고 흔히 경험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상처를 받는다면 미국 같은 나라에선 아마 살기 힘들 정도로 빈번히 일어납니다. 디렉트 한 공격도 있고 나중에 집에 와서 생각해보면, '아 이거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네' 이런 경우도 많지요.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걸까요? 그럼 우리는 여기서 대체 왜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이런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폭행들이 아직까지 빈번한 건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종차별의 시작은 무지(無知)에서 비롯된다

유치원도 다니기전 전 아주 어렸을 때, 전 어두움을 무서워했어요. 불이 꺼진 방 안에서 잠을 잘려면 항상 무서워했고, 그래서 불을 켜놓고 잠을 자려고 한적도 많았습니다. 어두운 공간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 뭔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던 어릴 적의 공포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불을 켜면 그 어두운 공간이 환하게 밝아지고 가구와 책 등 다른 물건들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안심하며 잠을 잘 수 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이처럼 모르는 것, 알 수 없는 것, 경험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에게 있어선 본능적인 두려움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다녔던 학교에서 검은 피부빛을 한 학생들을 보며 속으로 두려움과 걱정을 했던 나 자신조차 사실 인종차별을 하고 있던 거지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 나와 피부 색깔이 다른 그들과 교류해 본 적이 없었고 영화나 책, 신문기사 등의 미디아에서 본 모습들이 어떤 특정 인종에 대한 저의 편견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지요. 훗날, 제가 ESL 클래스에서 만났던 아프리카에서 왔던 학생은, 제가 알던 그 누구보다 더 예의 바르고 지적인 청년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는 흑인에 대한 저의 편견을 바꿔주었던 사람 중 한 명이었지요. 이렇게 한 번, 두 번 알기 시작하면 편견이라는 건 없어질 수 있는 거지요. 하지만 제가 본 미국 백인들의 문제점은, 인격 형성 과정인 어린 시절에 이런 편견을 뒤집을 기회가 많이 없단 겁니다.

 

그들은 유색인종을 볼 기회조차 없는 게 사실이다

세월이 흘러 대학을 나오고 미국에 정착을 한 저는 운이 좋게도 졸업 후 바로 미국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LA의 특성상, 많은 수의 다인종이 살기 때문에 직장 내에서 다이렉트 한 인종차별을 경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만약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나 폭행이 있을 시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고 즉각적으로 조치가 취해지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유색인종이 적은 타 도시에서는 이런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도 문제점 중 하나입니다. 어느 날, 제 팀에 텍사스 출신의 백인 신입이 하나 들어왔어요. 핏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창백한 피부에 차디차게 푸른 눈빛과 연한 갈색머리를 한 전형적인 백인이었지요. 업무에 관해 그녀를 지도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처음엔 마치 나 같은 외국인의 영어는 들어본 적이 없다는 듯 제가 말을 건네면 제 발음을 잘 못 알아들어 재차 확인하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어요. 나중에 어느 정도 얘기를 하고 알아낸 건, 그녀가 어릴 적 텍사스 시골 농장에서 자랐고, 대도시에 있는 대학에나 가서야 엘리베이터를 처음으로 타봤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충격적인 말을 듣고 제가 느낀 건, 물론 이처럼 익스트림한 케이스도 흔치 않겠지만, 많은 시골 출신의 미국인들이 엘리베이터는커녕 여러 인종을 보고 교류하며 인류의 다양성을 경험하기 힘들다는 것이지요.

 

미국은 정말로 큰 나라이고 대부분의 미국은 대평원이 펼쳐진 시골 깡촌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유색인종들이 일할 기회가 많은 대도시에 모여 사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런 시골에 사는 미국인들은 동양인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자랐을 확률이 굉장히 크지요. 그들이 유색인종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대도시에 있는 대학에 가는 건데, 이마저도 학사학위를 받는 사람의 비율이 평균 35% 정도 되는 걸로 보아, 많은 수의 미국인들이 평생을 살며 유색인종과 단 한마디의 말도 건네 보지도 않고 편견에 사로잡혀 살다 죽을 확률이 크다는 겁니다. 바로 이 점이 제가 생각하는 미국의 인종갈등의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인 거지요. ESL 클래스에서 만났던 아프리카 학생이 저의 선입견을 바꿔 놓은 것처럼 이들에게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현실적이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인종차별은 본능적이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있지요.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동정을 하고 서로 돕는다는 말인데, 미국에 나와 수많은 인종을 보며 느끼는 생각입니다. 대학을 다닐적에도 같은 한국 학생들끼리 클래스를 나누어 끼리끼리 몰려다니는걸 종종 봐왔는데, 유학생은 유학생끼리, 1.5세 (십 대 중반이나 후반에 온 이민자들)는 그들끼리, 또 2세는 2세들과 어울려 다닙니다. 아무래도 편하지요. 같은 처지와 상황에 고민도 비슷하고 일상도 비슷하고, 그게 인간의 심리가 아닐까요? 하물며, 인종이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요. 한 스탠포드 박사에 의하면 *이런 인간의 심리는 본능과도 같다고 합니다. '본능'이라는 말은 직접 쓰지 않았지만, 어릴때부터 같은 인종의 사람에게 더 '긍정적'인 심리반응을 한다는 거지요. 이와 더불어 유년시절을 철저하게 자신의 인종만 보고 어떤 사람의 편견으로부터 비롯된 말을 듣고 자란다면 그 갈등의 원인이 더 깊어지는 거지요. 

 

외국인 비율이 점점 많아지는 한국 사회에서도 네이버 뉴스에 달린 댓글이나 기사를 보면서 그들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시선도 곱지 않은걸 보며 인종갈등이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보이진 않을 겁니다. 뿌리 깊은 인간의 심리와 구조적 문제로부터 비롯되는 인종갈등, 어떻게 하면 그 갈등의 폭을 좁힐 수 있을까요? 

 

*: news.stanford.edu/2020/06/09/seven-factors-contributing-american-ra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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